어떻게 미로 - 고창범 목사

at 2023-10-19 06:56:37.0 / 832 조회수

필자는 중학생 시절에 수학을 비교적 재미나게 잘했던 기억이 있다.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났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수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답을 찾는 과정속에서 긴장감과 오묘한 성취감이 있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당시 수학의 정석 1을 마스터하고 나니, 공식을 따라서 풀어가는 것이 재미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과정이란 것이 결국 어떻게(how)라는 논리적 발걸음이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라는 과정은 오늘을 사는 인생과 목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긴장감을 주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들 각자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인생을 ‘어떻게 풀어가느냐’를 따라 삶의 질과 방향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는 현재 목회를 감당하고 있는 목회자이다. 하지만 수학의 세계에 눈을 뜨고 고등학생 때부터 ‘어떻게’라는 세계에서 몹시 치열하게 싸웠다고 스스로 평가를 해 본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말하면, 사춘기라고 말할 듯싶다. 어설픈 기초 수학을 배우고는 고등 수학을 위한 과정에서 엇박자가 난 시기처럼 인생에서 사춘기는 찾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사춘기는 반항적인 질문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질문하며 주어진 현실들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기준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때 당연히 믿었던 성경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질문하며 설명이나 증명이 부족한 성경을 믿지 못하게 되었었다.

보다 치명적인 부분은 부모님의 일반적인 사랑에 대한 기준도 바뀌면서, 미성숙한 자아와 육체는 부모님에게 반항한다. 어찌보면, 사춘기는 How라는 질문 속에서 미로를 헤매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가 보는 목회 현장에도 신앙적인 사춘기로 성장과 성숙을 위한 어떻게-미로(How-Maze)에 있는 구도자들(Seekers)을 많이 보게 된다.

How-Maze를 치열하게 방황했던 필자는 26세 되는 1월에 인생의 진한 쓴맛을 보았다. 바닥인 것만 같았던 그곳에서 철학을 통한 생각쟁이인 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 전환의 핵심 단어는 how에서 why로 질문을 바꾸는 것이었다.

왜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왜 피곤한 듯 괴로운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시작으로 신앙에 있어서도 변화가 찾아왔다. 왜 하나님은 창조를 하셨는가? 왜 온갖 기적들을 행하였는가? 왜 나를 사랑하시는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는가?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나를 위해 인내하시며 기다려 주셨는가? 그러면서 “어떻게 미로”에서 탈출(천로역정)하고 목사가 되어 지금은 구도자들을 위한 목회자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