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통해서 - 고창범 목사
at 2024-05-12 19:32:34.0 / 507 조회수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창문 넘어 동네 이웃들의 집을 보고 있다. 집과 나무가 조화를 이룬 자연의 나라 뉴질랜드 분위기를 만끽하는 셈이다. 창문 밖에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다채롭다. 정면으로 보다가 오른쪽 부분을 더 보고 싶으면, 왼쪽 창문으로 가까이 가면 된다. 물론 반대편도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면 보인다.
하지만 그 창문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이면의 세상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일상에서 타고 다니는 자동차 문이나 배 혹은 비행기 창문 넘어서 보이는 세상은 그림과 같은 풍경이다. 그렇지만 그 창문은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려면, 그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조금 더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보고 싶다면 창문을 넘어 나가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배 혹은 비행기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바다 한 가운데서 창문 넘어 다른 전경을 보려고 한다면, 깊고 무서운 바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다. 만약 하늘에서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창문 안쪽에서의 관점이다. 반면에 밖에서 창문의 안쪽을 보는 관점은 또 다를 것이다. 생각의 날개를 펼쳐 보았다.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서 필자를 감시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잠깐 드는 생각으로, 도둑이 우리의 집을 도둑질하기 위해서 창문을 통해서 염탐하고 있다면? 아마도 염탐하는 것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 도둑이 창문을 넘어서 집 안으로 들어올 경우는 문제가 된다.
창문을 통해 집 밖에 넓은 세상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 자신도 누군가에게 노출이 될 수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문명 안에 커튼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 같다. 오늘 필자는 마음의 창을 통해서 교우들을 비롯한 타인을 보기도 하지만 보여주기도 한다. 그 마음의 창문을 적절하게 열고 닫으면서 말이다.
이런 마음의 항해를 하다가 마무리를 하려고 자리에 앉으니 창문 넘어 밖은 캄캄하다. 듬성듬성 불빛만 보인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창문은 누군가의 마음같이 보인다. 요즈음 유난히 마음을 든든히 지켜야 할 일들이 있다. 주님의 마음에 집중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