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희망의 기준  - 고창범목사

at 2024-10-11 17:10:00.0 / 200 조회수

  아주 오래 전 이집트의 바로 왕 앞에서, 야곱은 자신의 지난 인생을 나그네와 같았다고 했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넘어 필자도 느낌을 알 것만 같다. 인생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목회자로 살아온지도 어언 30년 정도가 되었다.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알고 있었다면, 결단코 발을 내딛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도 있고 열정도 있고 나름의 주신 달란트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나의 계획이나 뜻대로 되어진 것은 열 손가락 안에 있을 것 같다. 글쎄 열정과 열심의 정도를 따라 실패감도 있고 상실감도 있었다. 더욱 어려운 것은 절망감이 바위가 되어 짓누를 때이다. 

  지난 단독 목회에서 세 번의 큰 절망감 속에서 사역의 위기가 있었다. 그 때마다 역전의 간증을 주셔서 16년의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답을 써 내려간나면, 아마도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도 있을 듯싶다. 이 짧은 칼럼에서 포인트를 짚는다면, 그것은 ‘희망’ 이란 단어로 일축할 수 있을 것이다. 

  절망은 바라던 것을 상실한다는 의미이고 희망은 바라던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지난 나그네와 같은 인생에서 필자를 비롯한 우리들이 절망의 늪에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주간 동안 묵상을 해 보았다. 아니 몇 개월 전부터 생각과 묵상을 거듭했지만, 나름의 깨달음과 해답을 찾은 것이 몇 일 전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아내와 둘만의 담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절망과 희망은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절망의 바닥을 들여다보니, 나 자신이 주인인 것이 보였다. 내가 세운 계획과 목표대로 되지 않아서 가졌던 상실감이 절망감으로 이끈 것이다. 하나님께 삶을 전적으로 맡긴다고 하는 목회자가 그런 시간을 반복했던 셈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에겐 시간이란 개념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 인간에게 관련이 있는 것이다. 절망이 희망이 되는 정곡점은 나 자신은 죽고 하나님께서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시간에 들어가면, 그의 때와 방법을 기대하면서 소망이 자리를 잡는다.

  이 기준이 잡힌 오늘의 나의 평안 지수는 갈망을 넘어서 소망의 입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