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의 항해 끝에 - 고창범

at 2024-10-19 04:37:57.0 / 28 조회수

지난 목요일 오전과 오후 사역을 마치고 말씀 준비까지 마치고 4시경에 퇴근을 했다. 교회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교회 후문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2~4시 방향으로 바다가 보인다. 잠깐 만끽을 했다. 하지만 문이 닫히고 난 후, 순간적으로 교회 열쇠의 행방을 찾게 되었다. 모든 주머니에도 없다. 분명히 챙겨서 나왔는데 없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당황한 시간 속에서 곧 그 열쇠꾸러미를 찾았다. 왼쪽 손이 책과 함께 꼭 쥐고 있었던 것이다. 코웃음과 함께 혼자 웃고 주차된 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던 중에 깨닫게 된 것을 지금 나누려고 한다.

잠깐의 웃고픈 사건 속에서 필자는 생각했다. 내가 너무 꼭 쥐고 있거나, 당연히 가지고 있어서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잊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불안해 하거나 불평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몇 개월 전에 목회자들 컨퍼런스에 갔을 때, 한 선배 목사께서 필자를 보고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부럽다고 하신 기억이 난다. 글쎄 모든 것의 범위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데 무슨 기준인 것일까? 아 칭찬을 하시는 표현으로 해석하고 지나왔다. 그런데 1주일 전에 10년 정도 앞선 선배 목사 두 분이 비슷한 말을 한다. 글쎄 나에게 격려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필자를 보며, 좋겠다고 한다. 아직 그 나이면 자신있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당신들이 나이를 먹어 힘을 잃어가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도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니, 앞선 인생과 사역의 선배들 눈에 보이는 뭔가가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다시 말해, 우리들 각자가 자신은 가지고 있으면서 보지 못하는 장점이 있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주어진 것이다.

필자가 보는 관점에선 선배들의 연륜과 재력과 안정감 등등 부러운 것들 가득하건만, 그분들이 가진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은혜’라는 찬양 속에서 말하듯,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당연한 것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들의 항해 속에서 도달한 선착장은 오늘 내게 주신 은혜가 나에게 족하다는 ‘평안’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