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화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at 2026-08-18 13:52:58.0 / 55 조회수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바꾸는 하루를 만난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떠난 평범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날 강물은 엄청난 시련 속에 멀리 흘러갔다. 그 시련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인생을 조금씩 알아가던 무렵,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때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에 피가 채 마르지 않았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세상에 대한 반항과 분노도 많았고 불만도 적지 않았다. 그런 감정은 생각을 지배하는 철학의 채석장도 요동치게 하였다.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고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질문들이 다소 빠르게 삶에 스며들었다.

그때 내 나이 18세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당시 "그것만이 내 세상"은 미래에 펼쳐질 인생의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사춘기 반항아의 인생 출사표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1980년 당시 헤비메탈 음악은 반항적인 세계관을 위한 퍼레이드의 행진이었다. 다행인 것은 당시에 엄청난 사운드의 음향이 내 주위에 없었기에 청각을 조금이나마 덜 손상입었던 것 같다.

 

# 음악이라는 꿈

경기도 성남시의 명문 중에 하나인 풍생중학교를 졸업했다. 훌륭한 선생님 덕분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문제는 그 고등학교 시절과 함께 사춘기도 시작되었다. 그런 시기에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매일 그대와", "사랑한 후에" 등등 음악에 심취했다. 락 발라드를 향한 음악에 꿈을 꾸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 당시 가졌던 열심과 열정에 후회나 미련은 없다. 내 사춘기의 불을 전부 다 태웠기 때문이다.

그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와 3학년 2학기를 뺀 나머지 시간은 학업과 담을 쌓았다.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국가의 의무교육제도 때문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은혜로 여겨진다. 내 인생의 첫번째 역경을 말하기 위한 서론은 여기까지이다. 첫 번째 역경은 젊은 청춘의 때에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력은 중년을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다시 학창 시절인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보자. 가장 머리 회전과 기억력이 생생할 때, 학교 밴드부에 들어가서 클라리넷 악기를 연주했다. 방과 후에는 결성한 보컬 그룹과 함께 기타를 배웠다. 리더의 기질을 가진 덕에 그룹 결성도 친히 하였다. 다른 학교에서 2명 그리고 내가 속한 학교에서 2명, 그렇게 나를 포함한 5명이 독수리 오형제가 되었다. 성남 시청 근처에서 자라나는 그룹사운드가 된 셈이다. 대중적으론 들국화 팀이 모델이 되어주었다. 특히 그 멤버 중에 드러머가 성남의 수정구 출신이다. 그 밑에서 배우는 선배들이 우리 팀을 이끌어 주었다.

음악이란 공통분모가 우리에겐 매직과도 같았다. 사춘기 뻗쳐나오는 온갖 기운을 한 곳으로 모아 주는 출구였다. 후회 없이 온 마음을 다해 열심을 쏟아부었다. 크고 작은 학생들만의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도 했다.

돌아보니, 1980년 중반에 교회 문학의 밤 행사에서 창피한 추억이 있다. 교회의 문학의 밤 행사에서 우리 팀은 ‘모나코(Monaco)’라는 연주 음악을 했었다. 학원에서 배운 것인지라 온갖 멋을 내고 연주를 했다. 이 음악은 프랑스 출신의 장 프랑소아 모리스의 작품이다. 문제는 이 곡이 당시 레코드 라이센스 이슈로 불법적인 해적판이 되었다. 그 결과 밤업소에서 주로 연주되었던 곡이었다. 무지함이 건네준 창피한 선물을 교회 문학의 밤에 올린 셈이다. 창피함도 몰랐던 지난 날은 순수함 속에 추억으로 남는다. 그 모든 시간 속에 우리는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심과 집중력을 가지고 연습하던 중,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젊은 대학생들의 등용문을 알았기 때문이다. 강변가요제 혹은 대학가요제와 같은 대회가 그것이다. 대중음악에 입문하고 자신들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 출구였다. 우리의 꿈이자 목적은 음악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지속하려면,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했다. 리더로써 친구들에게 꿈을 나누었다. 대학에 가자! 더 넓게 그룹사운드의 꿈을 펼치자! 라고 말이다. 당시 들국화를 비롯한 송골매와 다섯손가락 등등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설득 끝에 마음과 생각이 모아졌다. 전문대학이든 지방의 대학이든 일단 입학이 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