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실패가 열어준 새로운 세계
at 2026-09-29 17:08:34.0 / 74 조회수하지만 그 실패에는 꼬리가 하나 따라붙었다. 그곳에서 다른 나라들을 보는 세계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세 개(3)적인 사람이었다. 신혼여행으로 태국을 가 보았다. 선교를 위해 필리핀을 가 보았으니, 한국과 태국과 필리핀 새 나라를 가 본 사람인 셈이다.
그런 나의 세계관이 다른 나라들을 보게 된 것이다. 지도에서 보았던 나라들은 훨씬 넓고 많았다. 필리핀이란 나라를 발판 삼아서 다른 나라를 꿈꾸고 도전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 나라가 바로 현재 본인이 살고있는 뉴질랜드이다. 맨 처음에는 유럽 쪽에 네덜란드로 어렴풋이 이해했다. 영주권 취득이 가능하다고 한다. 취득한 사람에겐 학비가 지원되고 공부하는 동안 생활비도 준다고 한다.
처음엔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싶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어 무시까지 했었다. 그런 나라가 있으면, 어떤 고생도 감내하며 살아보겠다고 했었다. 그러다가 당시 함께 뜻을 나누던 동료들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인터넷에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번역해 가면서 두루 알아보았다. 허구나 사기가 아니었다. 진짜 그런 곳이 있었던 것이다.
유학의 실패가 확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그 대안으로 전혀 부족하지 않은 듯 보였다. 11월 말경에 바기오 생활을 접고, 곧장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한국에서 약 4개월을 준비하고 뉴질랜드 유학을 시작했다. 그 유학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영주권 취득이었다. 외형적으론 이민이 되었다.
2001년 3월 23일을 기준으로 하면, 25년 된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 영주권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대위기가 있었다. 물론 그 상응하는 역전도 있었다. 그 역전 스토리가 이번 장의 주제이다. 점수제 이민(General Skills Category)으로 아내가 주 신청자가 되어 진행했다. 아내가 학벌이나 실력 그리고 영어가 뛰어나니, 주 신청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