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0.5점의 벽
at 2026-09-29 17:05:39.0 / 72 조회수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2001년 3월 초에 이민 가방을 들고 뉴질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항공료를 아끼려고 말레이시안 항공사를 이용했다. 뉴질랜드 땅에서 팀 목회를 위해 3명이 함께 입국했다. 가족들이 들어오기 전에 렌트 집과 자동차를 준비하고자 함이다. 먼저는 정착할 도시를 정하는 것이다. 후보 지역은 해밀턴(Hamilton)과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두 곳이다.
뉴질랜드 도착하고 2일째 되는 날, 일행은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해밀턴으로 갔다. 여러 가지 검토한 결과 우리 모두에게 적합한 곳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시간과 재정을 검토하니, 불필요했다. 해밀턴으로 정착지를 정하고 가족들이 오기 전에 렌트집을 구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별것이 아닌 이야기가 있다. 렌트 집 어디를 가든지 물과 전기는 안정적이다. 특히나 욕실 안에 샤워부스는 언제나 따뜻한 물이 나온다. 당시 아내에게 전화를 통해 자랑하듯 말했었다. 자기야, 언능 와~ 여기는 샤워할 때 언제나 따뜻한 물이 콸콸 나와 너무 좋아~ 당시 한국의 집도 그런 샤워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필리핀 렌트집은 녹물이었고, 끓인 물과 찬물을 섞어야만 샤워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그렇게 흔한 목욕탕이 없었다. 뜨거운 듯한 온천의 열기가 많이 그리운 이민 생활이다.
방문 비자의 최대 체류 가능 기한은 9개월이었다. 필리핀의 실패는 잊고, 뉴질랜드 영주권 신청을 위한 준비까지도 모두 마쳤다. 딱 하나만 준비되면 된다. 그것은 영주권 신청을 위한 영어 점수였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어 석사를 가진 아내도 영어는 힘들었다. IELTS(영국령 영어능력평가) 일반 평균 5.0을 받으면 된다. 공부도 안하고 그냥 시험을 쳤는데 4.5가 나왔다. 조금만 보강하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연습 시험과 두 번의 공식 시험에서 모두 평균 4.5가 나왔다. 0.5가 모자란 것이다. 당시 응시자는 3개월에 한번만 시험이 가능했다. 3월에 입국하여 4월에 첫 번째 시험을 가졌다. 두 번째는 7월에 가졌다. 이제 11월까지 시험의 기회는 한 번뿐이다. 이것을 놓치면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준비된 모든 서류는 다시 준비해야 한다. 두 번째 실패가 깊은 어둠처럼 엄습해 왔다.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고심 중에 아는 모든 지인에게 중보 요청을 하고 기도했다. 한국과 필리핀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만난 공동체가 기도했다. 이민 사회에서 코리아 디아스포라의 관계는 끈끈했다. 갈급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