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역전의 장소

at 2026-09-29 17:03:11.0 / 69 조회수

그런데 더 큰 장벽이 생겼다. 기도 응답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이해 불가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시험 자체를 응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당시 이민 문이 활짝 열리면서 시험을 치르는 사람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아내가 시험을 칠 자리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 시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긴축 경제로 간간이 살면서 시험에 집중하는데, 타 도시에서 잠까지 자면서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무조건 시험을 치러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지 해결방안을 찾아야 했었다. 지난 인생에서 역전의 시작엔 항상 문제보다 어려운 시련이나 고난이 있었다. 참으로 괴롭고 아프다. 무엇보다 그 아픔이 온 가족의 몫이 될 때, 심리적인 압박은 가중된다. 그런 압박감 속에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유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인생에서 크게 실패를 모르고 지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크게 시도한 것들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랬던 내 인생에 두 번째 실패와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다.

고백하건대 정말 간절한 마음을 주님께 구하고 또 구했다. 그런데 우리가 살던 익숙한 지역이 아닌 타 도시(현재: 오클랜드 메시대학)에서 시험을 치른다. 시험 전날 도착해서 저렴한 숙소에 들어갔다. 2살과 4살 된 두 아들은 그저 좋단다. 어디를 가든지 맥도널드만 나오면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가진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대략 14일 정도가 필요했다. 한 가정의 이민이 좌지우지될 운명의 날은 14일이었다. 글쎄 지난 인생에서도 가장 늦게 흐른 시간 중에 하나로 기억된다.

드디어 그 결과가 나왔다. 11월 3일 토요일로 기억된다. 아내는 뜻을 함께한 믿음의 공동체와 기도회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주일예배를 위한 찬양인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12시를 전후한 시간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말한다. “됐어~” 두 글자였다. 세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열리는 단어였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준 단어였다. 그렇게 원하고 바라는 영어 점수 5.0이 “됐어”라는 말이다. 아내의 위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자로도 강하고 엄마로도 강한 아내가 자랑스러웠고 고마웠다. 그 소식과 함께 알고 지내던 지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