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만난 쓰나미

at 2026-10-24 13:14:28.0 / 10 조회수

강한 지진과 같았던 유방암이 지나고 1년 정도 지났다. 아내가 다른 부분의 이상 징후가 느껴진다고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라는 말처럼, 심장이 철렁했다. 무조건 의사에게 상담을 했다. 보험이 있으니,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방암 전문의에서 막혔다. 검사하도록 추천서 하나만 써 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할 필요가 없고 할 수도 없단다. 병원 시스템 절차상 아내는 검사할 수 없단다. 그 이유를 지금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항암치료를 받은 아내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 같다.

기억을 되돌리니, 2012년 12월 아내의 생일 전후였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2013년 1월 한국으로 들어가서 검사를 했다. 며칠이 지나고 결과가 나왔다. 한국의 삼성의료 담당의가 말한다. "난소암 3기초 입니다." 다시 물었다. "난소암입니다." 어이를 상실했다. 땅이 쑥 꺼지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초상집 같은 분위기를 껴안고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가능한 자료들을 가지고 뉴질랜드 담당 의사를 찾아가 만났다. 자료를 자세히 살폈다. 그제야 정밀 검사를 시행했다. 한국의 검사가 틀릴 리 없었다. 당황한 의사가 몇 번을 사과한다. 자신은 절차상 이유로 그리했다고 변명한다. 너무 화가 났고 당장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뉴질랜드 의료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 들어가서 수술하고 치료받을 길을 모색했다. 2개월간이나 암 덩어리를 키운 셈이다. 그 담당 의사가 밉고 싫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치료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보험 적용이 제한되었고, 한국 내에서 머물 곳도 마땅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뉴질랜드에서 치료를 받기로 하였다. 무기력한 현실에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 문제는 이 분노가 나의 심장을 자극하였다. 두 번째 정신을 잃게 했던 증상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업친 데 덮친 격이다. 아내는 말했다. "아픈 것도 편하게 아플 수 없다"고 말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수술 날짜를 잡고 암 제거 수술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만 같은 항암치료를 다시 보는 것이다. 이 시기에 나는 나대로 본격적인 MRI 검사를 받았다. 최종 검사 결과 병명이 나왔다. 부르가다 신드롬(증후군)이라고 한다. 발작의 원인이 심장질환에서 오는 것이고 한다. 부정맥으로 이해가 된다. 다만 갑작스러운 실신이나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단다. 위험한 상황이니, 돌연사 방지를 위한 ICD장치를 심장에 이식하자고 한다. 3개월 동안 기도했다. 다시 만난 의사가 새로운 소견을 제시한다. "ICD 장치를 시술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위험 단계에서 회색 지대로 내려왔다고 한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시술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치료를 의뢰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부부에게 쓰나미가 이렇게 밀려왔다. 높이와 크기를 생각하면 한 개의 쌍으로 몰려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