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The story of the church in Ephesus with many puzzles to admire

at 2022-02-07 22:49:56.0 / 121 Hits

삼삼한 순례자들(가이드와 운전자 포함 33명)은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은 후, 식당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에베소 교회에 도착하였다. 그렇게 방문하고 싶었던 교회, 코앞에서 식사를 했던 것이고 그 식당엔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함께하였다. 당시엔 코로나 확산 전이었던 것이 무척이나 감사한 오늘의 고백이다.

이름값을 제대로 못 한 사데 교회를 지나 네 번째로 방문한 곳은 그 유명한 에베소 교회이다. 터키 서부 지중해(에게해)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로서 볼 것이 참으로 많았던 곳이다. ‘바람직한, 흠모할 만한’ 교회는 행위와 수고를 겸비한 인내(요한계시록 2:2)할 줄 알았던 교회로 남아있다.

기록에 의하면, 1세기에 부활을 목격하고 오순절의 성령체험을 한 사도들이 직접 세운 교회라고 한다. 책과 지도에서만 보던 현장을 직접 보니 또 한가지가 보여진다. 예루살렘이 아닌 터키 땅에서 에베소 지역이 복음의 전초기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구슬이 꿰어지듯이 척척 맞춰지는 퍼즐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오후 2시경에 도착해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누가의 묘가 다소 본인에겐 충격적이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던 누가가 어디서 살다가 어디에 잠들었는지에 대한 생각과 연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의 묘

누가의 묘는 이오니아식 건물 양식을 따라 사방 16개의 기둥을 세워 16미터의 길이로 건축되었고, 로마 시대에 유명 용사나 건강의 신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었다고 한다.

우리 순례자들이 보았던 묘는 비잔티움 시대에 그 구조를 변형시켜 서쪽을 입구로 하고 동쪽을 머리 방향으로 하여 예배 처소로 사용했던 유적지인 것이다.

1860년 영국 고고학자 T. J. Wood가 오데이온을 발굴하던 중, 귀갓길에 본 건물의 일부인 십자가와 황소 모양이 그려진 비석을 보고 누가의 무덤이었음을 판정했다고 한다.

누가의 묘 앞에 있던 성구가 기억이 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10)
한국의 성서 보존회에서 작업하여 남긴 안내문 마지막에 기록된 성구이다. 신약교회의 소중한 정신인 영혼 구원을 향한 메시지가 분명하게 느껴지던 누가의 묘였었다.

두 번째로는 사도 요한의 노년에 대한 퍼즐을 마저 완성할 수 있었다. 십자가상에서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셨다. 그 이후에 대한 스토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요한과 마리아가 지냈던 장소가 에베소 지역이라는 설이다.

에베소 유적지 오른쪽 야술크힐에 위치한 성 요한 무덤 교회는 AD 527년에 세워졌다가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한다. 그 지하에 요한의 시신을 모셨다고 한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

AD 64년 바울이 로마의 성밖에서 순교를 당하자, 요한이 대신하여 지도자로 세워졌다고 한다. 12명의 제자들 중에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사도이다. 그 후에 버가모, 서머나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지중해 연안의 밧모섬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계시록을 남긴 것이다. 그의 시신이 지하에 있을 것이란 생각 앞에 본인은 순례자의 마음으로 잠시 묵상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무덤과 기념한 교회를 점심 식사 전에 들렀던 것이다. 당시엔 이동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정리를 하지 못했었다. 밧모섬에 유배까지 마치고 돌아온 그가 인생 말미에 남겼던 요한복음과 요한 일이삼서…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을 경험하고 난 요한은 사랑의 사도답게 주님의 사랑을 복음서와 서신서에 잘 담아두셨음을 알게 되었다.

맞춰진 퍼즐들을 보고 나니 위대한 선교의 선구자, 바울의 선교 여정 중에 가장 오랜 기간을 머물렀던 에베소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임한 성령의 불길이 핍박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예루살렘에서 오늘날의 터키 지역으로 흩어지고 확산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핍박은 터키 지역을 복음으로 쑥대밭이 되게 하였다. 그중에도 바울이 가장 공을 들인 에베소 교회는 쫓겨난 크리스천들이 복음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세 번째 맞춰진 퍼즐은 두란노 서원과 관련이 있다. 이 복음이 이어지고 신약교회의 정신이 계승되고 진리가 바로 전수되는 것엔 두란노 서원의 역할과 영향이 지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모아졌다.

에베소 교회는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보임으로 칭찬을 받았다. 그런 그들이 두 번째 칭찬을 받은 것은 “행위와 수고와 인내”의 신앙을 무시하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요한계시록 2:2).

교회의 표준을 떨어뜨리며 세속화를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오는 거짓 사도들의 정체를 드러냄으로 칭찬을 받았던 것이다. 많은 메시지 중에 진리와 비 진리를 분간하고 분별할 수 있는 기반은 어디였을까? 그 해답을 두란노 서원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온갖 비방과 모략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강론한다. 이곳은 주 후 3세기경에 셀수스 도서관으로 세워진다. 확언할 수는 없겠지만 도서관의 전신이 두란노 서원일 것이라 생각된다.

셀수스 도서관 앞에서

원래 로마식 포럼 자리에 세워졌으며 많은 장서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했다. 이곳에서 일행들과 다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지금으로 본다면 국립도서관급일 듯하다.

2000년 전에 세워진 건물을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학식을 쌓으려면 높이 쳐다보아야 하는가 싶다. 오랫동안 쳐다보고 나니 뒷목이 아픈 듯하다. 그 많던 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슬림에 의해 태워졌을까?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영적인 은사를 분명히 인정하지만 은사주의자들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특히 자칭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낸 자라고 외치는 자들은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목회를 현직에서 감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더욱 현실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주님께서 보내는 메신저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체험도 있고 새벽기도 때에 메신저로 쓰임 받기를 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처럼, 말씀을 받고 옳고 그름을 날마다 상고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고민과 연구는 두란노 서원과 같은 곳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란 생각 속에 퍼즐 한 개를 더 맞춰보았다.

나의 목회 현장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분별법은 한 성도가 성경 말씀대로 살았는지와 그의 삶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위하여 인내로 견딤을 넘어 게으르지 않았던 에베소 교회(요한계시록 2:3 환경에 굴복하지 않은 증거)로 칭찬을 받았다.

신약교회는 가정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였기에 그 어떤 공동체보다 말씀대로 살고 삶의 열매를 가졌음을 오래된 성지 터 위에서 느껴보았다.

신약교회 당시의 거짓 사도는 다름 아닌 니골라당을 의미한다. 주님도 이 집단의 행위를 미워하신다고 하셨다(요한계시록2:6). 미워한 이유는 “한 번 믿은 뒤에는 무슨 행동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Gnosticism)를 믿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해서 구태여 육체의 정욕과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이 저편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신앙의 자세는 물질과 육체는 악할지라도, 영은 항상 선하기 때문에 방탕하고 죄 된 삶을 살아도, 영의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괴변 속에 건강하지 못한 신앙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 스며들게 되면, 우리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흠모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종교 집단으로 매도될 것이라 생각한다. 신약교회 특히 에베소 교회를 보면서, 복음에 대하여, 그리고 진리에 대하여 싸우는 믿음의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버스 안에서 졸거나 잠을 잘 수 없는 몹쓸 민감함을 가진 예민남이다. 그런 중에도 유익한 점은 생각과 묵상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재미난 생각과 진중한 묵상을 했다.
인내할 줄 알았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떠 올리며, 절제하고 인내하며 경건(베드로후서 1:6)을 말한 베드로 사도의 말씀이 또 하나의 퍼즐로 맞춰졌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의 어려움 중에, 오늘을 사는 우리 교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런데 흠모할 만한 교회가 첫사랑을 잃었다고 한다. 말씀의 옳고 그름을 깊이 있게 생각하고 신앙 공동체로 모여 살던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목회자인 나는 심히 궁금하다. 그것은 나만의 두란노 서원에서 연구하고 다음 달에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