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가 날던 그 때- 윤정규목사

at 2024-02-15 07:44:18.0 / 898 조회수

우리에게서 소중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봄이 오면 동네를 날던 제비를 이제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토종벌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제초제 사용으로 농사에 많은 도움은 되었지만 생태계의 중요한 한축을 차지하는 벌들의 생태기억력 감소와 온난화가 소멸의 위기 속으로 벌들을 밀어 넣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어려서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쇠똥구리, 방개, 개구리, 여치, 잠자리 등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곤충들이 주는 촉감을 기억한다. 그래서 초등학생때 숙제를 위해 곤충채집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책상에 앉아 인터넷으로 곤충을 관찰해야 하는 현실이다.

예전에 당연히 있는 것들인데 이제는 “사라졌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아쉽다. 잠자리채 하나면 하루종일 신나게 뛰었던 그 기억! 어린아이도 쉽게 잡던 잠자리도 이제는 만나기 어렵다. 그 잠자리를 잡기 위해 해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너무나 재밌게 보내던 시간이 이제는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사라지는 것은 눈으로 만나는 자연생태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들이 있다. 상호 존중하는 예의가 무너지고, 사회질서에 있어야 하는 도덕적 관념들이 사라지고, 공동체와 타인을 위한 희생정신이 없어졌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지나친 교권침해로 교육현장이 이제는 존경이나 존중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지고 있단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면 겁나는 시대이다.

어쩌면 교회도 이러한 영향을 받고 있어 보인다.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경건이 위협을 받고 있다.

교회에 필요한 헌신보다 자신의 스케줄이 우선되고 있다.

개인 존중이라는 단어로 교회의 꽃인 공동체 예배의 간절함이 사라지고 있다.

영국의 오래된 한 교회는 댄스파티를 위해 정기적으로 장소를 빌려준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어느 곳에서는 공동체 예배가 없는 개인 간증 모임이 우선시 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정작 사라져야 할 것들은 거짓과 위선, 폭력과 전쟁, 미움과 편견인데 말이다.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다시 벌들과 잠자리들이 날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한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예배의 능력이 우리를 다시 주님앞에 겸손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선한이웃교회와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