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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 칼럼 2024

보아스 칼럼 2024

고창범 목사의 짧은 글 모음

  • 손가락과 손바닥 - 고창범목사
  • 3가지 혼난 후, 바램 속 기도
  • 모든 것(Anything) - 고창범 목사
  • 베델스 비치 저녁 노을 - 고창범목사
  • 꿈 속에서 2 - 고창범 목사
  • 꿈 속에서 1 보아스 목사

 어느 날, 한 남자가 의사에게 갔습니다. 남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죠.  
"의사 선생님, 제가 어디를 눌러도 아파요! 머리를 누르면 아프고, 배를 누르면 아프고, 다리를 눌러도 아파요!"  의사가 남자를 한참 동안 진찰하더니 말했습니다.  

  "손가락이 부러졌네요."  

  아주 짧은 유머이다. 부러진 손가락으로 무엇을 만지던지 아플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것을 소유했더라도 아픈 손가락으로 만지면, 역시 아플 것이다. 그러니 기쁨도, 행복감도 거리가 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마치 비뚤어지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마음과 관점에서는 왜곡되어 보이고, 아니꼽게 들리며, 무작정 아프고 괴로롭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누군가가 손가락질을 할 때, 1개 손가락을 뺀 3개는 자신을 가리킨다. 그나마 중간 입장일 것 같은 엄지손가락은 3개 손가락을 든든히 지지하는 것만 같다. 누군가를 향한 손가락질에서는 어떠한 위로나 치유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이 보지도 못하는 방향에서 그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다른 사람을 가리킬 때, 멋진 자세를 어떤 소통 관련 강의자에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지적하지 말라고 한 후,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하고 다섯 손가락 모두가 상대편을 향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 손바닥은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라고 부언한다. 그 존중 속에 소통이 있을 것이고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되어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시키고 위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질문하고 묵상을 거듭하며 두 눈을 감으니, 한 가지 이미지가 떠 오른다. 하늘을 향했던 손바닥으로 나의 가슴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다독여 주는 모습이 말이다. 그러면서 마음의 깊숙한 곳에서 샘물처럼 쏟아 오르듯 생각나고 들려지는 말씀과 찬양이 있다. 시편 8편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주가 베풀어두신 달과 별 내가 보오니

남성호르몬이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적게 분비될 경우 남성 갱년기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한다.(한겨례 신문) 그 시기가 50대라고 한다. 그리고 부작용 중에 하나가 밤이 무서워진다는 약간의 우스셋 소리가 있다. 어쩔까나? 필자의 나이가 50대 중반이고 그 말이 맞는가 싶게 동의를 하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형용할 수 없는 묘한 연약함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위에서부터 누르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위에서 언급한 느낌과 함께 최근에 3가지의 혼란을 정리해 보았다. 글쎄 얼마나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런 나 자신은 인생에서 처음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며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혼란은 성장기에 있었던 두 아들들의 사춘기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에게 전적으로 의존적이던 자녀들이 사춘기를 기점으로 자립을 위한 반항이 그것이다. 그 반항은 성장하는 정곡점인 것인데, 받아들이는 본인은 놀람 속에 혼란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혼란은 그렇게 사춘기를 지나 대학생이 된 청년기였었다. 언제라고 꼭 집을 수는 없는 시기에 청년이 된 아들들이 나보다 힘이 강해져 있다. 힘이 없어진 것은 아닌 듯 싶다. 자녀들이 듬직한 청년으로 성장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깨가 처진다. 글쎄 무력감이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닌가 싶다.

세 번째 혼란은 최근에 드는 것이다. 자녀들이 각자 성장해서 직업을 가진 후에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필자의 수입은 갈수록 제한적이지만, 자녀들은 극히 정상적이며 감사하게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 속에서 무기력한 감정이 엄습하듯 덮친다. 그래서 씁쓸함과 무력감 속에 마음이 뒤죽박죽일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문뜩 영적인 자녀들에게도 이런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바램 속에 기도가 생겨났다. 목회의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 안에서 구원받은 교우들을 통해서 위의 3가지 혼란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갱년기처럼 목회적인 갱년기도 있을텐데, 우리 부부의 자녀처럼 우리 교우들도 정상적으로 사춘기를 지나고 청년기를 지나며 성인(Saint)이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이번 주간에 필자의 생각이고 바램 속에 드렸던 기도이다.

15년 목회를 뒤돌아보는 안식월을 가지고 돌아왔다. 뉴질랜드의 하늘과 공기가 좋은지 이민 24년 만에 처음으로 느꼈다. 일단 이렇게 오랫동안 뉴질랜드를 떠나 본 적이 없었고, 뉴질랜드 일상에서 안정적인 마음이 부족해서 하늘과 공기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쉼과 안식의 시간 동안 대략 40-50명의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 그런 중에도 한가한 시간에는 선교관 옆에 있는 교회 도서관을 찾아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중에 특별히 눈에 들어온 제목이 있다. “Anything”이란 표지 제목에 “온전한 포기”라는 문구이다. 무엇인가 마음이나 생각이 복잡한 이면에는 선택의 기로가 있기 마련이다. 그 선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결국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을 직면하기 마련이다.

책의 저자 재니 앨런은 말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축복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질과 돈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하나님의 선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 결국엔 우상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이해한 바로는, 하나님의 선물이 어느 덧 당연시 되면서 권리로 자리 매김하는 일종의 위기감을 감지한다. 찬양처럼,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인 것인데 말이다.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말할 때가 있다. 글쎄 그 모든 것(anything)이 진짜인가 생각할 수 있도록 저자는 정곡을 찌르는 것만 같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했다. 모든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최소한 조건 혹은 마지막 남은 나의 자존심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언급할 수 없지만,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정직한 표현이다.

안식월을 떠나기 전에 성도들과 나누었던 말씀이 있다. 제자 베드로가 사도 베드로로서 두 번째 보내심을 받을 예언의 말씀이다. 베드로가 예전에는 자기 혼자 힘으로 옷도 입고 원하는 곳도 갔지만, 나이가 들게 되면 팔을 벌리겠고 다른 사람이 옷을 입히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21:15) 재니 여사가 말하고 싶은 것과 연결 지어진 메시지로 뇌리에 남는 듯하다.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할 때, 바울이 남긴 말씀이 다시 마음 깊은 곳을 후비듯 스며든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빌3:8) 하지만 내 속사람은 아직 온전한 포기를 못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anything이 깊이 묵상이 된다.

뉴질랜드 한 여름에는 자랑하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자연이 주는 힐링은 환상적이다. 필자가 사는 오클랜드는 NZ 전체 500만 인구 중에 25%가 사는 대도시이다. 나라 자체가 섬이고, 살고 있는 도시에서 동쪽이든 서쪽이든 조금만 움직이면 바다가 나온다. 무더운 여름이어도 그 물에 들어가면 너무도 추워서 45세 이후엔 무릎 이상은 들어가지 않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중순 현재, 날씨는 천당 아래 분당 그리고 이곳이 아닐까 싶다. 글쎄 말로만 듣던 푸켓, 몰디브, 하와이 혹은 남태평양 섬나라 등등이 필요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지난 몇 일은 주위 유명한 장소를 시간을 들여서 찾아갔고 그 곳에서 마음의 여유를 누려 보았다. 타카푸나와 리틀쇼올베이 그리고 베델스 비치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묵상을 가져 보았다.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은 오클랜드 서해안에 위치한 베델스(Bethels) 비치였다. 유명 관광지이자 서퍼들(surfers)이 즐겨 찾는 곳이다. 다른 비치와 다른 것은 흑색 모래라는 것이다. 아주 오랜 만에 그 흑색 비치에서 저물어가는 석양이 보고 싶어졌다. 아내에게 가자고 하니, 단번에 싫다고 한다. 이성이 발달된 아내를 감성이 발달된 남편이 이길 방법이 없다. 고심 끝에 동행자를 찾았다. 일거양득의 기회도 찾았다. 잠시 방문 중인 지인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섬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필자의 감성이 채워질 기회이기도 했다.

저녁의 노을이 시작되기 전에 도착하였고, 맨발로 흑색 모래를 힘차게 밟으며 해변가에 다달았다. 드넓은 해변에 많은 사람이 있지는 않았지만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동그란 태양이 서쪽 수평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려 앉는다. 마치 하루 동안 세상을 밝히는 사명을 다하고 이젠 좀 쉼이 필요한 듯 수평선을 향한다.

그렇게 저물어가는 태양은 그런 중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높고 넓은 하늘 위에 그림을 남긴다. 노을빛이다. 빛을 비춰주던 태양이 여전히 빛이 필요한 우리에게 환상적인 빨~간 노을을 선물해 준다. 그 노을을 바라보며, 함께 했던 일행과 담화를 나누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도 저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노을빛이 있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바닷가에서 석양을 보고 있는 일행을 뒤에서 보았다. 생각보다 큰 그림자가 있었다. 하지만 황홀할 듯한 노을을 바라보는 동안 그들의 뒤에 가깝게 붙어있던 그림자들은 사라졌다. 필자의 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소망 중에 주님을 바라본 믿음의 사람들의 뒷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 곳에는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복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

2주 전쯤에 큰 아들이 휴가차 호주에서 방문했었다. 그때 아들과 함께 시청했던 김해숙 주연의 '3일의 휴가'라는 한국영화를 계기로 꿈 이야기를 시작했다. 꿈 하면 성경 안에서도 많은 인물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 첫째는 꿈의 사나이 요셉이 아닐까 싶다. 요셉이 가진 꿈은 비전으로 해석한다면, 필자에게 주어진 꿈은 소망이라고 본다.

2013년 2-4월 3개월 동안 사방에서 고난이 닥쳐오니 결국엔 나 자신의 한계점에 달했다. 그리고 공황장애 현상으로 수개월을 고생했다. 그 당시 영혼육 전방위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 환난의 때에 가까이 주위에 있으며 중보와 함께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돌아보니 역시 어려움 중에 함께 하는 사람이 진짜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중에 잊지 못할 꿈을 꾸게 되었다. 당시 상황과 정황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꿈이어서 더욱 또렷하다. 환난 중에 있던 어느날 밤 꿈에, 나는 캄캄한 산을 오르고 있었다. 힘겹게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지진과 함께 산정상에서 폭발과 함께 용암이 흘러나왔다. 길은 지진으로 갈라지고 시뻘건 용암이 마구 흘러넘치니, 그 꿈에서 조차 ‘아 죽었구나’ 싶었다.

그런 중에 다행히, 꿈에서도 믿음의 사람답게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다. “주님, 살려주세요. 그리고 피할 길을 알려주세요” 그랬더니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제부터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기도하니 하늘에서 거짓말처럼 날개 달린 천사 2명(영화에서 주어진 이미지처럼)이 하늘에서 날아왔다. 그리고 양쪽에서 나를 들고 지진과 용암을 피해 공중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안도와 함께 감사로 고백하며 아래를 살펴보았다. 지진으로 사방이 갈라져 있고 용암이 이곳저곳에서 물 흐르듯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하늘 위에서 보니, 피할 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살았다 싶은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예상이 되는가? 글이란 표현의 제한이 있어서 어떻게 설명할지 한계를 느끼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은 나름의 해석이 가능하다.

안전하게 수호하듯 나를 공중에서 들고 있던 천사들의 행동에 당황하게 되었다. 당연히 나를 안전한 다른 곳에 데려다 줄 것을 기대했건만, 그들은 나를 다시 원래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당시 그 꿈에서 나는 두려워하거나 떨지 않았다. 오히려 담대했다. 왜냐하면 그 하늘 위에서 피할 길을 눈으로 보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을 헤치며 걷다가 깨어났다.

그런 후에 암송하고 있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말씀과 함께 두 번째 환난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 이후, 고난받는 것이 네게 유익(시119:71)이란 말씀의 뜻도 깊이 있게 체험하게 되었다. 이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모든 환난과 역경 중에도 반드시 주께서 예비한 피할 길이 있음을~

지난 10일간 취직해서 호주 멜버른에서 일하던 첫째 아들과 함께 우리 가족은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충분하지 못한 일정 속에서 함께 기억할 추억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중에 어제(24년 1월 5일) 밤에 아들과 단둘이서 '3일의 휴가'라는 한국영화를 시청했다. 죽은 엄마가 저승에서 3일간 살아있는 딸 옆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서로의 과거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감동이 있는 영화로 요약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딸이 엄마의 과거를 이해하지 못했다가 장례 후에 자신의 삶을 괴로워하는 나머지 자학을 하고 몹쓸 생각까지 한다. 그런 딸의 모습에 안타까운 엄마는 망자의 영이 되는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딸에게 나타나서 딸을 위로하고 오해를 풀어주며 행복한 잠을 이루도록 한다. 일어난 딸은 꿈을 꾼 것으로 영화에선 묘사한다.

이 영화가 마무리되어 끝날 무렵에 필자는 아들에게 말을 했다. “아들아, 우리는 죽어서 저렇게 후회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서로 말하고 풀고 이해하고 살자~” 가슴이 따뜻한 아들도 “그렇게해요”라고 말했다. 23년 “Plane” 영화 이후 두 번째 아들과의 시간이었다.

그런 후에 지난 10여년간의 시간들 속에서 꿈을 통해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야기 두 가지가 기억으로 떠 올랐다. 두 가지 꿈의 순서는 긴가민가하지만, 지난 55년의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해였던 2011년과 2013년 중간 혹은 후로 생각된다.

2011년 아내의 첫 번째 유방암 소식 후, 항암치료 기간 중에 심적으로 몹시 힘들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엔 직면한 위기를 그저 감당하느라 생각하고 묵상할 여유조차 없었다. 오직 다가온 암을 직면하고 감당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꿈 속에서 황홀하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천국을 향해 걸어갔던 체험이 있었다. 몸이 둥둥 떠서 날아가듯 거닐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꿈에서 깬 후에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졌던 위로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고 그 소망이 당면했던 현실의 고통을 감당하도록 힘이 되어 주었다.

당시 그 꿈에서 함께 거닐었던 일행이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확실한 것은 모두가 놀라움과 기쁨 속에 거닐었었다.

두 번째인 2013년은 최악이라고 말할 정도로 가혹한 한해였다. 1차 아내의 암투병 이후, 목회적으로 위기와 경제적 위기가 찾아왔었다. 그런데 13년에 아내가 난소암 발병으로 두 번째 암투병이 시작된 것이다. 덮친 격으로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가 가족을 두고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한 사건이 터졌다. 결정적으로 필자에게도 충격들이 폭탄이 되어 떨어져 쇼크로 다가왔다. 감당하기 힘든 공황장애가 와서 밤에 자다가도 졸도를 했던 기간이 있었다. 이런 과거의 충격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삶에도 부작용으로 남아있다.

두 번째 고난의 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주셨던 꿈 이야기는 다음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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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 Boaz 주인장 2024-01-14 16:50:13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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