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독  고창범 목사

at 2022-12-04 15:35:18.0 / 1145 조회수

  필자는 이민 목회를 섬기고 있다. 2000년도 외국을 나와서 지금까지 타국 생활이다. 비전을 품고 사명을 따라 나름의 충성됨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하고 2009년부터는 담임목회자로써 한 교회 공동체를 14년째 섬기고 있다.

  주어진 목회는 전적인 은혜로 감당하고 있다. 그 여정 속에서 되짚어보니, 제법 많은 시간 속에 외로움과 싸웠던 기억이 난다. 영어권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제법 익숙할 만한데도 여전히 영어는 불편하다. 바쁘게 살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적적함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몇 개월 전에 만들어낸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외로움’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고향 생각이 나고 남매들이 보고 싶고 허물없는 친구들이 그리워 지면서, 엄습하듯 찾아오는 외로움이란 감정은 허전함과 공허함 속에 가두는 것 같다. 그리고 급기야는 인생무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바닥을 치고 내려가기도 한다. 그런 공허한 감정 속에서 얼마 전, 묵상 중에 떠오른 외로움과 비슷한 단어인 ‘고독’이 생각났다. 

  자연스럽게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를 생각의 땅을 파듯 파헤쳐 보았다. 약간 파 보았는데 큰 차이점을 보이질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깊이를 더해 보니, 현격한 차이점이 보인다.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는 바닥에는 인생무상이지만, 고독의 바닥에선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호흡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나간 삶의 여정을 정리해 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외로움과 고독, 두 가지 모두는 고립감이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넓은 세상에 혼자만 있는 것만 같은 고립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점을 찾은 듯하다. 외로움은 주위에 사람들이 떠나간 상태에서 홀로라면, 고독은 스스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떠나서 혼자가 된 고립인 것 같다.

  이민 생활 속에서 목회, 어차피 세상 사는 것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도심 한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과 있어도 외로움을 해결하거나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깝다면, 생각을 패턴을 바꾸어 하나님과 교제를 위해서 스스로 사람들을 떠나서 자발적인 고립에 들어가는 대안을 가져 보았다.

  그 고립의 바닥에서 찾고 느꼈던 것이 하나님의 호흡이었다. 중세 수많은 수도사들이 이런 고독을 맛본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 동안은 거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었다. 이런 후에 요즈음은 새벽기도 시간에 간간히 맛보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