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영적 싸움 - 고창범목사

at 2024-02-03 06:40:34.0 / 486 조회수

  이번 주간에 새벽기도 시간엔 유난히 기도가 어려웠다. 아니 힘들었다. 냉철하게 보건대 이런저런 생각의 쓰레기가 많았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왜 그랬을까? 필자의 간절한 소망을 기도로 올려드릴 영역을 넘어, 직접 고민 속에서 그 방법과 길을 찾아보려는 인위적인 생각의 시도들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사실도 기도의 시간이 있었기에 알게 된 것이니 경건의 시간은 꼭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 주 부교역자의 마음의 창 제목은 “고백”이었다. 마음의 생각을 볼 수 있었다. 필자는 교회 주보 맨 앞에 있는 ‘마음의 창’을 통해 본인이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과 마음의 맵을 공유한다. 짧은 글 속에서 인펙트 있게 담아야 하니, 제법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있다. 어떤 때는 내 마음만 벌거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 글은 일방통행으로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속하는 이유는 한 교회의 목회자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주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기 위한 미리보기 서비스로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에 뜻이 있고 뜻을 따라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고 믿는다. 그 생각과 말은 한 사람의 삶과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믿기에 더욱 확신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필자의 기도가 어려웠던 이유는 주님께 떼를 쓰듯이 2024년 교회의 양적 부흥을 기도했기 때문이다. 간절함과 열망이 앞서다가 보니, 간구하는 입술이 나감과 동시에 내 귀와 생각에는 방법론과 여러 책과 강의 혹은 간증과 같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이런 현상을 흔히 선택 경청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본인을 포함한 우리 대부분은 내가 듣고 싶은 소리에 친숙하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앞서게 되면, 다른 진실이나 조언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소원이 주님의 뜻보다 앞서면, 하나님의 긴밀한 말씀을 듣는 귀가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기도의 무릎을 꿇어본다. 기도할 때마다 보고 듣고 싶은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보고 듣고 알 수 있기를 치열하면서 부지런히 싸우고 있다. 내 안에 열망과 갈망이 더할수록 이 기도는 더더욱 힘겨운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 기도를 포기하거나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명확한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행하심은 언제나 옳았었고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이 사실을 알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 줄을 아시오.  여호와께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오. (신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