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찾아본 쉼(숨+1)

at 2024-03-26 06:53:28.0 / 622 조회수

필자는 현재 나의 고향 한국의 성남에서, 지난 단독 목회 15년을 뒤돌아보며 안식월을 가지고 있다. 은혜 아래 오래된 나의 모교회가 섬김으로 제공해준 선교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주 어린 시절 건축 예배가 있었던 곳(현재는 1층 교회식당)에서 약 25년만에 식사를 했다. 당시 교회의 주역이었던 분들이 천국에 가시거나 현재 실버 목장의 일원이 되었고, 어린 아이였던 이들이 주역으로 교회를 지키며 섬기고 있다.

 

안식월 중에 특별히 기억될 것은 한국 입국 후 2주일이 지난 어제(3월 21일) 13,000걸음을 걸었던 것이다. 모란 시장에서 30여분 걷고 차를 타고 성남 단대사거리로 가서, 그곳부터 태평역까지 걸었다. 학창시절과 젊은 날의 발자취 속에 추억이 가득한 곳을 마음껏 걸었다. 무척 힘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 날들의 희노애락이 새록새록하며 기묘하게도 기쁘고 행복했다. 곳곳을 거닐면서 지난 날들의 추억들을 되살려 보았다. 기억들이 신기할 정도로 선명해졌다. 까마득히 잊혀졌던 이름도 얼굴도 생각이 났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 있었다. 온갖 건물과 길들이 문명이란 옷을 새롭게 입고 바뀌었다. 무엇보다 거울이 없으면 도무지 알 수 없었을 것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이다. 마음과 생각은 추억 속에 청소년 혹은 청년 같은데, 필자의 몸은 뭔가 모르게 하나 혹은 두 박자가 느려졌다.

젊은 날에 철도 없고 신앙도 없었던 때가 문뜩 떠오른다. 무지했던 날의 실수이니 주님께서 많이 눈 감아 주신 것이리라. 이생을 살고 나면 그냥 끝나는 것으로 알고 유난히 GoGo 리듬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SlowGoGo 혹은 Waltz 리듬을 타고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를 & 찬양을 좋아한다. 왜일까? 확실이 답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인생에서 삼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 15년의 목회 현장 속에서 인생의 가장 크고 깊은 고난이 있었다. 죽을 것만 같았고 죽는 것이 오히려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고백이다. 아내가 가진 4번의 암 수술과 2번의 항암, 필자가 가진 심장 질환으로 인한 죽을 고비들, 그리고 그 아픔 뒤에 찾아온 후유증(after or side effects)은 현실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금번에 가지는 안식월은 아주 많이 남다르다고 생각된다.

 

쉼과 안식 속에 있으니 문뜩 부활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머무셨던 무덤에 생각이 머물렀다. 완전한 죽음 상태였던 예수님은 육신의 삶과 특별히 3년간의 제한과 한계 특히 십자가의 고통에서 완전한 안식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성경의 말씀을 따라서 3일 낮과 밤을 죽음의 권세 아래 철저하게 거하셨다. 부활의 능력과 기쁨이 더더욱 돋보이는 곳이 그 무덤이다.  다가오는 부활절을 앞에 두고 무덤을 묵상하며 완전한 죽음 속에서 쉼과 안식을 보며 부활의 능력과 소망을 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