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넘지 못하는 모래 - 고창범 목사

at 2024-05-17 11:58:56.0 / 434 조회수

목요일 오후 설교의 초안을 완성하고 거리찬양을 나가려고 하니, 비가 온 후로 바람이 불고 거리의 의자는 온통 젖어있다. 일정을 바꿔서 교회 근처 산책길을 거닐어, 바다 옆에 있는 설탕 공장(Sugar at Chelsea Bay)으로 갔다. 바닷물이 만조를 이루어 해변에는 작고 약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작은 파도들의 얼굴을 찬찬히 주시해 보았다. 10년 전에 거닐었고 3년 전에도 거닐었던 길까지는 그 파도가 올라오지를 못하고 있다. 필자가 거닐었던 산책길은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음에도, 파도는 가까이 오지 못한다.

이러한 생각과 묵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설교를 준비하며 읽고 묵상했던 성경 구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앞에 두고 떨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이다. 내가 모래로 바다에 경계를 지었으니 바닷물은 영원히 그 모래를 넘지 못한다. 파도가 아무리 높고 세차게 쳐도 모래를 넘지 못한다.”(5:22)

주님께서 주신 깨달음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거친 파도가 몰아쳐도 결국엔 그 모래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물가에 앉아 계신 주님과 함께 있는 동안 그리고 주님과 절벽 위에 있는 동안, 결코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담겨지는 듯하였다.

그리고 묵상의 깊이를 더해 보았다. 모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확실히 하기 위해서 구글에서 찾아보니, 높은 산의 화강암 덩어리에서 깨져 나온 꽤 큰 돌덩어리가 강을 타고 굴러 내려오면서 부딪치고 갈라지면서 바위는 자갈로 변하고 더욱 작아지면서 결국엔 작은 모래알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모래를 씹으면 치아가 감당하지 못했나 싶다.

이렇게 튼튼한 모래 속에서 유리 성분이 나온다니, 이 또한 놀라운 일인 듯하다. 산책하며 생각의 정리정돈을 해보았다. 큰 돌덩어리 같았던 우리 각자가 깨지고 부서져 작아진 후, 강이나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물살과 파도에 밀리고 밀려서 다다른 곳이 해변인 것 같다. 그것이 오늘날 이 땅에 보내진 우리 크리스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사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하신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세상이 하나님을 향해 대적할 때 마지막 보류로 세워둔 모래가 우리 교회,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 속에서 주어진 사명의 자리를 다시 되짚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