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인생이 있을까? - 고창범
at 2025-10-18 05:16:53.0 / 202 조회수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해마다 ‘청백전’이라 불리는 체육대회가 열렸다. 청색과 백색, 두 편으로 나뉘어 온 힘을 다해 뛰고 응원하던 그 시절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쪽에서 “청군 이겨라!” 외치면, 다른 쪽에선 “백군 이겨라!”로 맞불을 놓는다.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같은 교정 위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따지고 보면, 짙은 청색이 옅은 청색으로 섞이는 일이다.
그 시절엔 단순한 경쟁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청년의 때를 맞이할 즈음, 사회의 색깔은 조금씩 달라졌다. 한국 사회엔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청색과 흰색의 건전한 대립은 흑백 논리를 거쳐서 점차 청색과 적색의 격렬한 갈등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흐름은 2000년대를 지나며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나라와 이념, 정치와 신념의 차이가 색깔로 나뉘며 서로를 밀어내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도, 그리고 나의 조국 대한민국도 파랑과 빨강의 긴장 속에 놓여 있는 건 여전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 ‘보랏빛 인생’이 가능할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석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자석에는 북극과 남극이 있고,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그런데 두 힘이 완전히 균형을 이루는 한 지점이 있다. 그곳을 물리학에선 ‘자기중립점’이라 부른다. 그 지점에서는 자력이 0, 즉 힘이 상쇄된다. 보라색이 바로 그런 색이다. 서로 다른 두 색의 긴장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지점, 거기서 보랏빛이 태어난다.
그 생각을 하던 중,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다. 영어권 신학 과정을 공부하던 2006년, 교수님의 추천으로 보았던 영화 <What Dreams May Come>(1998). 한국에서는 ‘사랑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작품이었다. 당시에는 영어로 수업을 따라가기도 버거웠지만,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행복한 가족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두 아이를 잃고,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슬픔 중에 괴로워하던 주인공 또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천국에서 가족을 다시 만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천국의 배경이 온통 보라색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아내는 화가로서 자신의 고통과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그 그림 속에는 늘 보라색 꽃이 피어 있었다. 남편은 그 보라빛 세상 속에서 다시 아내를 만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보라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 만들어낸 색이었고, 용서와 회복의 빛이었다. 서로 다른 존재가 다시 만나 하나가 되는 색, 그것이 보랏빛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빨강처럼 뜨겁고 격한 마음과, 파랑처럼 냉정하고 이성적인 면이 부딪힐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두 색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거기서 아름다운 보랏빛이 태어난다. 그것이 사랑의 색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빛일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런 보랏빛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극단과 대립이 아닌,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따뜻한 조화의 빛.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인생의 색깔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