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져 완성된 사랑 - 고창범 목사

at 2025-11-08 05:33:26.0 / 122 조회수

크고 높은 산과 같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보니, 위에서 아래로 보인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고 나니, 한 줌의 땅이 되어 흔하고 연약한 땅이 되었다.

넓고 깊은 바다와 같던 어머니는 어느 날 보니, 몸매도 가슴도 풍만해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풍성한 몸매는 수척한 나무처럼 말라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도 추억도 잊는가 싶더니, 하늘의 뜬구름처럼 구름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듬직한 사랑 안에서 보호자와 위로자였던 나의 산과 바다가 나의 곁을 떠난 지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그들이 없는 이 세상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고, 돌아보니 오늘 한 쌍의 부부가 되어서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우리 자녀들의 보호자요 위로자로 살고 있음을 보았다.

이생을 졸업하고 삼생에 계실 부모님을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산으로 건재하지 못했지만, 땅이 되어서, 삶의 기초가 되고 인생의 집을 한층 한층 올리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든든한 디딤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어주었다.

어머니는 바다로 멀리 떠나 자유롭게 살아갈 것을 포기했던 것 같다. 산과 땅에서 구르고 굴러서 바다까지 온 온갖 돌들을 잘게 부순 뒤, 수많은 모래를 자신이 낳은 자식인 양 품고 해변으로 몰아세운다. 그렇게 다다른 모래들이 다시 바다로 흘러들어오지 않도록 끊임없이 땅과 만나는 해변에서 모래를 보호한다.

문뜩 생각하니, 필자가 그 모래 중에 하나가 되어 있는 것만 같다. 산이었던 아버지를 떠나 깨지고 부서지고, 구르고 굴러서 다다른 바다가 연상된다. 그리고 그 바다는 기다렸다는 듯이 보이진 않지만, 그 바다 속에서 온갖 폭풍과 해일 가운데 작지만 견고한 모래 한 알을 만든아. 어느 누구에게도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강인한 모래로 말이다.

산과 바다 양쪽을 바라보며 찬란한 태양 아래서, 그 모래는 그리운 마음을 빛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동일한 과정을 거쳐서 함께 한 모래들과 함께 군데군데 모여서 수많은 사람이 밟고 걷도록 길이 되어준다. 지나간 길을 언제 그랬냐는 듯 지워주면서 말이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신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