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기울어진 고개를 바르게 - 고창범 목사
at 2026-01-03 04:16:17.0 / 19 조회수필자는 목회자로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사역 중에 거룩한 부담 가운데 하나는 매주 설교를 준비하고 전하는 일이다. 1995년부터 수많은 설교를 해 왔을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자매가 있다. 지금은 한 가정의 아내요, 엄마가 되어 있을 나이일 것이다.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시절, 설교 시간마다 그 자매의 한결같은 자세가 유독 연상된다. 먼저 다리를 꼬고 앉는다. 그리고 고개는 왼쪽으로 비딱하게 기울인 채 설교자를 주시한다. 관찰해 보니 모든 예배에서 그러했다.
그런데 이 자매의 특징은 그런 비딱한 자세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1년 동안 지나며 관찰이 되었다. 대화할 때나, 함께 일을 할 때도, 일단 비딱한 관점에서 보고 싫다거나 반대한다. 행여 하더라도 소극적이면 양반이고 투덜대며 분위기를 어둡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던 자매로 기억한다.
세월이 지나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유학생으로 왔던 그 자매 안에 말할 수 없는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인가를 보거나 판단할 때, 비딱한 자세를 기준으로 본다면 제대로 본질을 볼 수 없을 것이란 기준에서 그렇다. 얼마 전 한국 유명 정치인이 연말이라고 교회에 찾아가서 예배드린 사진이 크게 기사화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그가 방문한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의 기준인양 기사화되는 것이 불편했다.
그 교회는 해방신학을 기초로 하는 불건전한 교회로 일반적인 교회에서는 경계하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해방신학이 가진 위험은 복음을 정치화하고 가난한 자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하나님의 선을 이념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변질시켜 선교를 운동으로 만드는 경우이다. 이 부분이 현재 한국의 교회와 사회와 정치까지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 생각한다.
이런 비딱한 신앙관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필자의 소견에는 잘못된 관점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관점의 저변에는 판단하는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정의와 불의 혹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자신이란 것이다. 심지어 수많은 세월 동안 만들어진 법일지라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비판하고, 정죄하며, 심지어 뜯어고치려 한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버린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잘못된 신앙도 이럴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자판기 혹은 자동응답기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마틴 루터가 말한 기도의 정의를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다.” 70도 기울어진 고개를 말씀 앞에 똑바로 세우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