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씀 & 다른 결실 - 고창범 목사

at 2026-02-20 06:19:30.0 / 40 조회수

필자는 작년에 개인과 가정과 교회 전방위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고난과 역경의 시간에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역발상으로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기를 결정하였다. 그 첫번째 행동으로 작년 10월부터 교회 교육관에서 기타 교실을 시작한 것이다. 교민 웹사이트에 광고를 올리고, 기타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모았다. 9월 중순부터 2주간 광고한 결과 4명이 시작하였다. 1명은 함께 가르치며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한 사람이고 실제는 3명의 수강생이 모인 셈이다. 연령층은 60세를 넘긴 분들이다. 젊은 날에 배우고 싶었지만 기회와 여건이 허락되지 못했던 이들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모여서 기타교실을 가지고 있다.

3개월을 가르치니 불가능할 것 같은 수준으로 제법 잘 쫓아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재미가 붙은 수강생은 주위에 지인들을 이끌더니, 모이고 모여 이제는 8명이 시끌벅적하게 젊은 날에 불렀던 옛 추억의 노래를 반주하며 노래한다. 7080 세대가 느끼는 공감을 가지면서 작은 기쁨을 맛보고 있다.

이런 기타 교실을 가지면서 작은 깨달음과 교훈을 가진 것이 있어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실제 수강생들의 실력은 각자 다르다. 동일한 코드를 누르고 리듬을 연주해도 실력과 방법은 다르다. 이것을 가르치는 사람의 역량 차이는 여기서 나타난다. 맞다. 스스로 잘난체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웃으면서 긴장감 없이 재미나게 배우는 이들에게 놀라운 반응이 나타났다.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사람에게 동일한 사람이 설명하고 보여주고 들려준다. 나름의 노하우와 스킬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었다. 그 중에는 그 말을 듣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듣고 보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런 기타반 운영 속에서 매 주일 전하는 설교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발견되는 것 같다. 한 주간 말씀을 묵상하고 본문의 핵심 주제와 중요한 단어들을 연구한다. 그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갈급함으로 때로는 쥐어짜는 듯 뽑아낸다. 그리고 영적인 양식으로 성도들이 먹을 수 있도록 몇 번을 자르고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설교의 원고를 작성한다. 

그리고 주일 설교시간, 강단에서 30분 정도, 가능한 선에서 절제하며 설교한다.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마음으로 전한다. 하지만 모든 성도가 다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왜일까? 각자가 가진, 들을 수 있는 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의 연륜이 많고 학식이 많다고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가 가진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그 귀를 가진 사람이 듣고 이해하며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결국엔 살아낸다는 것이다.

결국 주님의 뜻과 인도를 알기 위해서는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