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시간 속, 느려진 나 - 고창범 목사
at 2026-10-15 16:48:59.0 / 103 조회수언제부터인가 자주 듣고 들려지는 말이 하나 있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말이다. 가깝게는 최근 2026년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석을 지나 10월 중순이란 것이다. 2030 나이 때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속도가 이제는 빠르게 느껴지며 지나간다. 그러면서 과거 부모와 선배 세대들의 말들이 자꾸만 곱씹어지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그 속도를 감지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과거나 현재 & 미래에도 똑같이 흘러갈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본래 시간이란 개념도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영원한 세상에서 시간이란 개념은 우리 인류에게나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는다. 아무튼 삼생의 삶에서 이생을 사는 동안은 분명코 시간이란 제한을 받고 살아간다.
그 시간 속에서 왜 어린 시절엔 상대적으로 늦게 느껴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빨라지는 것일까? 이 질문이 지난 15일간의 묵상이고 연구 과제였다. 질문이 생기면 생각의 문이 열린다. 열린 문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재미난 여정이 된다. 필자가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구찾두77기도법” 마 7:7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법이다.
이 기도를 시작하면, 생각의 문이 열리고 보는 눈이 열리는 체험을 종종 한다. 그 눈이 열리고 나니 보였다. 시간이 빨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느려진 것이었다. 어린 시절엔 내가 해야 할 일을 부모 혹은 연장자나 숙련자가 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젊은 날에는 직접 내가 하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이라는 것을 먹고 노화 현상이 시작되면서 내가 반응할 속도가 느려진다. 문명은 언제나 자기만의 속도를 가지고 전진하고 있다. 컴퓨터가 AI 시대로 진화를 했다. 그리고 발전하는 속도는 인류의 상상을 깨는 신기록의 연속이다. 이런 시간 속에서 내가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가 신체적인 노화의 현상으로 사건이나 사고 발생 시, 반응이나 대처하는 능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민첩성이나 순발력이 느려지는 것이다. 이 생각에서 자신을 보니, 다소 이해가 되고 위안이 된다. 그리고 어른들이 말하는 소리가 크고 깊게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옆집 할아버지가 느리게 걷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물 흐르듯 살아가라.” 인생의 멀미처럼 느껴졌던 고민과 번뇌는 내가 흐름과 속도를 맞추지 못할 때 시작된 것 같다. 하나님의 속도에 나의 몸을 맡기는 하루를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