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 이야기

at 2022-02-07 13:51:45.0 / 1547 조회수

언젠가 지인의 짧은 글을 보았었다. 비 흡연가인 자신은 혼란스럽다고 한다. Smoke Free는 흡연을 자유롭게 하라는 뜻인가 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글이지만 당시 죄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던 중이라 생각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생각난 것이 Sin Free라는 단어이다.

                                                                                                            

모범적이고 흠모할 만한 에베소 교회도 세월이 흐르면서 Sin Free 경고등이 켜진 듯하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생명을 다하며 전해 준 진리 위에 세워진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순례자들은 에베소 교회를 방문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옛 도시 에베소는 배를 타고 항구에서 내리면 완만한 언덕을 이루며, 올라가는 양쪽 길에 도시가 지어졌다고 한다. 수천 년 이상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토사가 밀려와 바다와는 멀어져 있다고 한다.

결국 우리 순례자들이 본 유적지는 화려한 석조 건물로 지어졌다가 지진으로 무너졌던 도시를 발굴하여 재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감사하게도 걷기 편하게 위쪽에서 내려오면서 정문 쪽(옛 바다)으로 나왔다.

당시 가장 큰 항구 도시였기에 많은 교역이 있어서 재물이 풍부했던 도시라고 한다. 이 도시 정상에는 세계적인 유적지인 아르테미스 신전(the Artemis of Ephesus: 고대로부터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겨지던 거대한 신전)이 있다. 여전히 재건 공사가 한창인 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신전을 보기 위해 길을 걷던 중, 무리 지어 관광객을 반기면서 꽃을 주는 것인지, 판매하는 것인지 다가오는 여자들이 있었다. 전혀 유혹이 될만한 여인들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이드 목사가 소매치기들이니 조심하라고 한다. 환영하는 그들을 경계하고 지나쳤다.

그런데도 일행 중에 경계하지 못해서 물건을 잃어버릴 직전까지 경험한 해프닝도 있었다. 화려한 신전을 오르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어두운 사랑의 유혹으로 기억된다. 뭐랄까? 거짓된 신화나 우상을 만나기 전에 드려야 할 대가(cost) 같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에베소 교회는 화려한 문명 속에서 처음 사랑을 소매치기 당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신전 정상에서 아래를 보니 정말 멋지고 환상적이었다. 마치 내가 사는 오클랜드 시티 중앙에 있는 스카이 타워(한국: 남산타워)에서 주위를 보는 느낌 같은 것이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드넓은 세상의 부요함과 넉넉함이 안목의 정욕으로 남기에 충분할 듯싶다. 그 위에서 보면 4-5만 명 수용 가능한 원형극장(사도행전 19 : 28-29 소동이 일어난 옛 극장)도 한 눈에 훤히 보인다.

흠모할 모범과 잃어버린 처음 사랑은 신전의 정상에서 서로 오버랩 되지 않았을까 상상 속에서 그림을 그려보았다.

원형극장 도시 전경

사도 요한은 신약교회 당시의 교회들을 보는 평가 기준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사도 요한에게 항상 붙어있는 수식어가 있다. ‘사랑의 사도’이다.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중에서 우리 일행은 요한을 기념한 두 개의 교회를 보았던 것이다(빌라 델비아/에베소). 그리고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를 살펴보니, 교회들을 보고 평가하는 요한의 기준이 DSLR 카메라의 초점이 맞춰지듯이 또렷해 지는 듯하다. 그것은 맞다,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요한복음 3:16), 사랑하면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알게 되고(요13:35), 사랑하면 주님의 계명을 지킬 것(요한복음 14:15)이라고 하신다. 요한복음을 쓴 목적에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하려는 것(요한복음 15:17)이라고 하시면서 사랑을 이야기하였다. 그런 요한을 통해서 주님께서 일곱 교회를 칭찬하거나 책망하시는 기준도 사랑이었다는 해석의 눈이 열린 순례의 여정이었다.

에베소에서 우리 순례자들에게 유난히 눈에 띄는 길이 있었다. 그것은 큰 돌로 잘 다져진 도로였다. 가이드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지금도 이 일대에서 나오는 대리석은 유명하다고 한다.

여행사에서 나누어준 자료를 보니 1세기 당시 소아시아 관문으로 가장 큰 항구 도시였다고 한다. 이 관문을 로마 시대에 마차가 다닐 수 있는 돌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에베소 유적지 전체는 온통 돌로 도배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도시 전체가 튼튼한 돌덩어리들로 만들어졌다. 셀수스 도서관, 원형극장, 신전 온갖 건물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도로가 그러하다.

에베소 도로

그 돌로 다져진 도로를 보면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를 생각해 보았다. 처음 예수님과 제자인 사도들의 헌신 속에 사랑으로 다져서 모범적이고 흠모할 것이 많은 교회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처음 세대가 이생을 다한 후, 다음 세대들은 희생과 헌신 가운데 깔아둔 사랑의 도로를 화려하고 세련된 신전을 향해 걸어가는 탄탄대로로 바꿔 탄 것이 아닌가 싶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뒤따르는 순례의 길에서, 신약교회 당시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한 바울의 마음이 한 부분 읽혀지는 듯하다. 그는 가장 큰 은사로서 사랑을 말하면서 가장 좋은 길을 보여 주겠다고 하였다(고린도전서 12:31). 그리고 다음 장인 13장에서 사랑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였다.

결국 두 번째로 세워진 복음의 전초기지인 에베소는 사랑으로 다져진 신앙공동체의 모범이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런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었다는 것은 Sin Free 등불을 켜는 시작이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갈라디아 교회 공동체에게 보낸 편지에 서도 읽혀지는 것이 있다. 교회 공동체에게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하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말하며 가장 먼저 사랑을 언급한다.

신약교회에는 그 누구도 어떤 종교도 카피할 수 없는 예수님의 죽기까지 감당하신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을 필두로 희락과 화평이 가능한 것이다. 3가지 열매가 든든하게 다져져서 돌길이 되면, 다음으로 따르는 열매가 오래 참음과 자비와 착함, 그리고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로마가 깔았던 도로처럼 펼쳐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7교회 지도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버가모, 서머나, 두아디라 등등으로 이어져서 신약교회들이 견고하게 세워졌을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관점으로 신약교회를 다시 보고 관찰하고 연구하다 보니, 오늘을 사는 우리 교회들을 사랑의 기준으로 재조명해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듯하다.

상징적으로 사랑의 교회에 사랑이 없다는 풍자는 우리 교회들의 뼈를 때리는 말처럼 느껴진다. 가장 흔한 접근으로,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들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이혼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은혜로 열정적인 사랑으로 주님을 만나고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음의 시련이나 세상의 정욕에 빠져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세대가 그 한 예일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 교회 공동체에게 밀려왔던 세속화로 인하여 본질을 잃어버리고 세속 문화를 답습하기 때문이 아닐까 직면해 본다.

순례자의 여정 중간에 돌아본 신약교회들은 흩어져서 번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현대 우리 교회들은 도시화 되어가며 중형, 대형화되었다가 현재는 쇠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시골이나 외딴 섬에는 교회들이 힘을 잃고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명확한 현실이다. 흩어지면서 부흥했던 신약교회 당시와 모아졌다가 힘을 잃어가는 현대교회를 보면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과 도로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본다.

에베소 성지를 뒤로하고 다음 장소로 가면서, 들려지는 말씀이 있다. “만일 너희가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우리 교회들에게 두려운 경고로 메아리치는 듯하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모범되고 흠모할 것이 많은 에베소 교회에 큰 책망 거리임엔 틀림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질문이 생긴다. 이 사랑은 언제까지 그리고 얼마만큼 해야 하는 것일까? 사랑하면 빼놓을 수 없는 교회가 다음에 방문할 두아디라 교회이다. 그 기준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