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절제 없는 사랑을 했던 두아디라교회 이야기

at 2022-02-07 13:53:19.0 / 1509 조회수

처음 사랑을 떠올리면 풋풋하고 순수하고 열정이 떠오른다. 하지만 처음 사랑은 변할 수 있다. 아니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과 성숙을 통한 밀접한 관계로 진보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에베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흠모할 것들이 많았지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를 뒤로하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긴다.

달리는 차 안에 아내와 함께 앉은 순례자의 모습은 불편한 생각쟁이처럼 보인다. 쿠션 좋은 자리에서 불편한 모습으로… 대부분 사람은 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세히 보니, 계시록의 일곱 교회 모두에게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것을 언급하신다. 멀쩡한 귀를 가지고 있어도 듣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 편안한 의자에서 순례자는 불편한 모습으로 여정을 가진다.

에베소를 떠나 순례자들을 태운 버스는 2시간을 조금 넘긴 오후 5:50 두아디아 교회에 도착하였다. 목적지가 가까워질 때, 가이드 목사가 안내를 해 준다.

“오른쪽에 보이는 큰 건물을 지나면 나타납니다. 잘 보십시오~.”

2시간을 넘어 달려왔기에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과 성경과 책에서만 보던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눈이 커져 있었다. 드디어 큰 건물 뒤로 나타났다. 와~ 하고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거의 1초를 넘기고는 다소 허무한 감정이 들 정도로 실망감에 사로잡혔다.

우리가 본 곳에는 무너진 돌무더기와 제법 두꺼운 벽체가 몇 개 서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도심지 안에 있던 유적지는 초라함을 덮어쓴 모습으로 느껴졌다.

교회의 벽체

이것이 무언가 싶은 감정 속에 들어온 질문이 있었다. “이곳이 정말 두아디라 교회의 유적지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냥 누군가 만들어낸 장소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크게 감흥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다면, 유적지인지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유적지 안내문

우리 순례팀이 방문한 곳은 AD 5-6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반원형의 제단 부분과 4미터 높이의 벽, 그리고 서쪽 벽에 인접한 네모진 창고 만을 볼 수 있었다. 사도행전 19:10에 의하면, 바울과 그의 일행이 에베소에 2년 동안 머물면서 주위인 이곳에도 다녀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바울과 그 일행이 갔을 때 느낌을 상상해 본다. 처음에 가서, 유대인이나 헬라인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복음이 전해졌을 때 어떤 반응이었을까? 막막한 느낌이 들었을까? 버가모와 사데 사이에 위치한 두아디라는 고대도시였다. 그 도시 안에 교회의 흔적을 둘러보는데 25분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지난 여정을 돌아보니, 하루 동안 우리 순례팀이 방문한 일정이 매우 바쁘게 지나왔다. 06:05 출발해서 07:25 빌라델비아 도착, 07:50 출발해서 08:40 아데미 신전이 있는 사데에 도착, 09:25 사데를 출발해서 11:20 요한의 무덤이 있는 요한기념교회 도착, 11:50부터 13:52까지는 가죽공장 방문과 점심식사 일정, 14:00 경에 에베소 도착하고 둘러본 후에 15:43 출발하여 17:50 두아디라 도착의 일정이었다. 거듭해서 생각해도 우리의 여정이 순례의 길이였던 것이 맞는 것 같다.

두아디라(Thyatira) 터키어로 Akhisar(앜히사르)라고 하며 흰 성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자주 옷감 장사로 유명한 루디아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성 사업가로 선교에 크게 쓰임 받은 신약교회 당시 평신도 선교사를 배출한 곳이다. 물질이 귀하게 쓰임 받게 된 것은 바울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란 기록이 있다.

이 만남이 아시아에서만 머물뻔한 복음을 유럽으로 건너가게 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라고 믿는다(사도행전 16:14). 왜냐하면 그 일하심의 결과를 그리스의 빌립보 지역에 가서 루디아 기념교회를 보고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아디라교회 담장

두아디라를 향한 주님의 평가는 주를 위한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인내가 뛰어나다고 인정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사업은 당시 구리와 목화와 염색 부분의 전문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말한 루디아가 비단 장사로 유명한 사업가였다는 확신도 여기서 근거한다.

교회로서의 모습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랑과 믿음과 인내, 더구나 경제적인 부요함에서 성부(거룩한 부자)로서 교회의 사명을 다했던 교회였다.

더하여 처음 사랑도 잃지 않고 날마다 갱신하며 믿음 안에서 인내할 줄 아는 교회였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책망에 나타난 심각한 문제는 사랑함에 있어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마지막인 절제가 치명적으로 부족하였다.

사랑이 없으면 시작이 없어 문제이지만 절제가 없으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위험해지니 또한 문제이다. 사랑에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멈추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한다면, 더욱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두아디라 공동체였던 것을 다녀오고 나니 명확하게 보인다. 죄인도 사랑하고 악인도 사랑함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의 대표인 이세벨을 지나치게 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듯싶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지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적지에서 특이한 것이 한 가지 발견된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유적지는 거의 형식적인 담으로 낮게 분리될 뿐 누구나 들어와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적인 표현으로 신약교회의 두아디라 교회의 유적지로 존중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루디아기념교회

자료에 따르면, 두아디라는 염색뿐만 아니라 직조, 피혁, 도기, 빵,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장사를 하려면 동업조합에 가입하고, 절기마다 제사에 참여해야 했다고 한다. 나아가 제사 음식을 먹고 분위기가 고조에 이르면 신전의 사제들과 음행을 함으로 죄를 지었다고 한다.

용납의 경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교회는 거룩과 사랑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넓고 깊으신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과 공의 안에서 절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절제한 사랑으로 이세벨과 발람의 정신까지 품어버린 유적지의 뒷모습을 보며, 현장에서 깨달은 배움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듯하다. 시청각 교육의 묘미라고 할까? 현장을 보고 나니 입체적으로 보고 확신하고 해석을 감행할 수 있는 유익을 얻었다. 순례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만 같았다.

목회의 현장에서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다 보면,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도 여전히 이세벨의 영이 일하고 있음을 체험적으로 느낀다. 크리스천의 정체성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신약교회 당시 그들도 도심지 가운데 들어가서 칭찬받는 교회로 성장했을 것 같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사랑이 거룩의 영역을 넘어서면서 세속화로 급가속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회는 무너져버린 것 같다. 오늘을 사는 우리 교회들이 반면교사로 삼고, 사랑과 거룩의 경계선을 잘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AD 95년 당시 강력한 교회로서 많은 칭찬을 받았고 에베소 교회가 갖지 못한 서로 섬기는 사랑이 있었던 교회였다(요한계시록 21:18-29). 내적 결속력도 강해서 강력한 공동체로 쓰임을 받았던 교회가 십자가의 사랑과 거룩의 경계를 지키지 못함으로 허물어진 현장을 보았다.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순례자가 느낀

영적 느낌은 비례적으로 오랜 여운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바쁜 일정 속에 지친 우리 일행은 바울과 그 일행의 여정을 회상하며, 허기진 배와 피곤함에 숙소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안내 책자와 함께 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허무한 두아디라교회보다 실망할 돌무더기도 없던, 그래서 그냥 지나친 교회가 있었다. 고난을 떠올리는 서머나교회는 다음 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