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The story of the Church of Pergamum with two faces

at 2022-02-07 14:00:06.0 / 1541 Hits

작년 2020년 한국에선 코로나의 어려움 중에도 나훈아의 콘서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던 노래가 있다. ‘테스형’이란 곡이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가사 속에 한국과 세계의 정황을 포인팅 하듯 표현한 노래가 전국을 강타했었다.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질문형 노래로 기억된다. 온 세상이 왜 이런지… 상상도 못 했던 코로나가 작년에 시작되었고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

코로나 전에 가졌던 성지순례는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주어진 기회였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119 선교팀’이 한국에서 네 명으로 구성되어 날아와서, 천사의 손길처럼 도움과 기도의 응답을 주면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감격과 흥분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여정의 중간을 넘어가면서 몸과 마음의 피곤함이 은혜의 정곡 점을 넘어섰다. 시차에서 오는 피곤함, 너무 바쁜 일정들, 쉽게 적응할 수 없는 터키 음식들, 그리고 버스 안에서의 오랜 시간이 순례의 여정 가운데 자리 잡으며 힘겨웠다.

절제 없는 사랑을 했던 두아디라 교회와 죽었으나 살아있는 서머나 교회의 여정을 마친 저녁 7시 25분 늦은 식사를 하고 밤 10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어갔다. 다음 날 4시에 기상하고 5시에 조식을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6시 06분 호텔을 떠났다. 나중에 알았는데 기상 전인 새벽 3시경에 진도 4.8의 지진이 있었다고 한다. 그대로 천국에 가도 감사할 정도로 잠을 잤다. 그렇다면 그것을 느낀 일행은 필시 잠을 깊이 자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우리 일행이 이렇게 바쁘게 움직여야 할 이유는 그 당일에 터키에서 그리스로 국경을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드로아에서 환상 가운데 마케도니아 사람이 ‘이리 와서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움직였던 바울과 그 일행들의 여정을 되밟아 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국경을 넘는 것은 양 국가의 복잡 미묘한 관계만큼이나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요구되었다. 신약 당시 사도 바울은 원래 가지고 있던 선교 일정에서 갑자기 바뀌어야 하는 상황에서 흔들리는 지진만큼이나 그 심경이 복잡했을 것만 같다.

1년 6개월이 지난 오늘, 바울의 심경과는 다르겠지만 필자 또한 복잡한 심경을 느낀 것이 있다. 방문한 버가모 교회를 본 이후에 테스형(BC 470)보다 10여 년 늦게 태어난 둘째 테스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철학에 소크라테스가 있다면 의학엔 히포크라테스가 있다. 그 둘째 테스형에게 어려운 질문이 생겼다.

주어진 자료와 가이드의 말을 종합하면, 신약교회 당시의 버가모는 ‘아시아의 지성’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교육이 왕성했다고 한다. 동시에 ‘아시아의 아테네’라고 할 정도로 온갖 그리스 신을 섬기는 신전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도시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호텔에서 30분 정도였다. 부활이 있던 새벽에 마리아와 일행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영상 3도인 새벽 날씨는 차가웠고 도착한 성지는 역시 무너진 돌무더기가 넓게 흩어져 있었다.

무너진 교회 건물

비잔틴 시대에 지어졌던 교회 건물은 기독교가 크게 부흥했던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크기가 이전에 방문했던 교회들보다 확연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넓고 컸기 때문이다. 당시엔 가정 단위의 소그룹들이 도시 곳곳에 넓게 흩어져 있으면서 은혜와 성령으로 충만했을 텐데, 왜 이렇게 큰 건물의 교회당이 필요했을까? 혼자만의 생각 속에 질문들이 쌓이고 있었다.

큰 교회 건물

그 생각의 여정 끝에 주어진 답은 성경 “Repent of your sin”(요한계시록 2:16)에서 힌트를 찾게 된다. 회개하고 태도를 고쳐야 할 죄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당시 신약교회 성도들은 모이기에 힘을 썼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모였으며,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아주 많은 것들을 포기하였다. 심지어 안디바와 같은 순교자를 낳는 아픔도 겪으면서도… 회개가 촉구된 그들에게 또 다른 얼굴이 감지되는 부분이다.

아시아의 지성이란 별명처럼 교육이 월등하게 발전해서, 병원과 각종 의학 서적이 양피지로 남아 있다. 이집트 문명 하에 파피루스 종이가 대세인 시대에 최초로 양피지를 만든 곳이 ‘버가모’라고 한다. 파피루스 종이 공급이 막히는 위기 속에서 양피지 문명의 발달이 시작된 셈이다. 그 문명과 함께 한 교육에,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있다. 그런 영향권 아래, 지성과 신앙심이 뛰어났던 버가모 교회 공동체는 어떤 회개할 문제가 있었을까?

그 이유는 교회를 향한 사도 요한의 편지에 잘 언급이 되어 있는 듯하다. 순례자는 현지에서 확인만 했던 것이다. 버가모 교회는 사탄이 권세를 쥐고 있는 곳이었음에도 서머나 교회처럼 믿음을 굳게 지켰다. 하지만 문제는 또 다른 얼굴로 발람과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세속화된 교회가 된 것이다.

발달한 도심 가운데 무너져서 흩어져 있는 돌무더기를 보는 순례의 여정에서, 둘째 테스형에게 ‘테스형, 교회가 왜 이래?’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순례의 여정 동안 보았던 교회들은 문자로 보았던 지식과 설교를 위한 성경 연구 자료가 전부였다. 일곱 번째 방문한 버가모 교회의 땅을 밟고 추위에 떨면서, 그것도 어두침침한 조명에 의존하여 보았던 건물, 그것마저 터키의 대지진 때에 무너져 내린 보잘것없는 성지였다.

과연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 우리 크리스천은 일곱 교회 중에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진지한 질문과 생각이 든다. 교회는 분명코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교회는 사회 속 일터에 들어가고, 그 세상에서 살아내는 생명력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영적 세계를 추구하면서 말이다. 양쪽에 날이 선 날카로운 칼을 들고 계신 분(요한계시록 2:12)이 이미지로 떠오르면서, 두 얼굴을 가진 교회들이 번쩍이듯 보이는 것만 같다.

당시 성도들은 사탄이 점령한 도시 속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고 전수했다. 오늘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버가모 교회에게 남겨진 모습을 보니, 당시 발람의 가르침을 기초로 한 니골라당(필자의 표현: 니가 골라 잡은 당)이 단체로 연상이 된다.

구약의 발람의 이야기가 아주 적절한 예가 되리라 생각한다. 마음과 정신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면서, 말과 행동은 자기 원하는 곳에 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의 영혼은 별개라는 사고이다. 몸이 가 있는 것이지 정신은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하는 격이다.

버가모교회 전경

마치 현재 코로나 시대를 기회로 삼아서, 예배의 정신이 중요한 것이니 의식이나 예식에서 자유하자는 소리들이 오버랩되어 들려진다. 일명 영지주의(Gnosticism)의 정신이 교회공동체 안에 틈을 타고 들어와서, 자신의 상황과 여건 또는 환경에 따라 교회 안 가도 괜찮다고 한다.

의식이나 형식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더 우선하는 것은 정신(Spirit)이란 논리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가 급격하고 깊이 자리를 잡은 현실을 보고 있다. 이런 시각은 구시대적 발상일까? 아니면 예리한 영적 분별력일까? 회개해야 했던 버가모 교회는 테스형, 교회가 왜 이래?라고 물어볼 때, 속히 돌이켰어야 했을 것이다.

회개하기 가장 좋은 기회는 깨달은 즉시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 회개는 반성이나 후회 정도가 아닌 멈추고 돌아서는 것이다(Stop & Return: 정지홍목사, 킬라라좋은씨앗교회). 방문했던 새벽에,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있다는 발상은 버가모 교회를 답습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양쪽 날이 살아있는 칼을 가진 주님을 보았다면, 속히 돌이켰을 것이다. 그러면 두 얼굴을 가진 교회로 기억되지 않았을 것만 같다. 터키의 바다 국경을 넘으면서,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떠난 바울과 일행의 마음을 바다를 건너는 내내 묵상하였다. 물론 순례자들과 즐겁게 대화하면서… 국경을 넘어 저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교회를 기대하면서 말이다.